다양성과 평등을 기리는 콜롬비아의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

 

콜롬비아 남서부 파스토(Pasto) 지역에서 매년 1월 개최되는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은 인종, 계층,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화합의 축제이다. 흑백의 상징을 통해 평등과 다양성을 기리고, 수천 명의 시민과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이 행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본문에서는 이 축제의 역사적 기원, 핵심 행사, 예술적 의미,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콜롬비아의 색다른 새해맞이, 블랑코 이 네그로 축제의 기원과 철학

콜롬비아는 열정적인 문화와 다채로운 축제로 가득한 나라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인상 깊은 행사는 단연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Fiesta de Blancos y Negros)'이다. 이 축제는 매년 1월 2일부터 7일까지 남서부 나리뇨(Nariño)주의 수도인 파스토(Pasto)에서 열리며, 6일간의 공식 일정 동안 도시 전체가 화려한 색채와 웃음, 예술로 물든다.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흰색(Blanco)’과 ‘검정색(Negro)’이라는 대조적인 색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식민지 시대의 계층적, 인종적 구분을 넘어서 평등과 다양성, 포용을 상징하는 현대적인 문화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축제의 뿌리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0년대 후반, 파스토 지역의 아프리카계 노예들은 1월 5일 하루만큼은 주인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검은색 화장을 하고 거리로 나와 노래와 춤을 즐겼으며, 시간이 흐르며 백인들도 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1월 6일에는 모두가 흰색 분장을 하며 인종 간의 구분 없이 하나가 되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렇게 시작된 축제는 시간이 흐르며 지역민 전체의 연대 의식을 담는 상징으로 발전했고, 현대에는 예술, 정치, 공동체가 융합된 상징적인 사회 행위로 자리잡았다.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은 단순한 퍼레이드나 분장이 아니라, 평등에 대한 선언이자 예술을 통한 소통의 장이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얼굴에 검은색과 흰색 물감을 칠하고 서로를 포옹하며, 인종, 계층, 종교,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 존재함을 축하한다. 이러한 축제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거리감을 줄이고, 사회적 포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퍼레이드, 분장, 조형예술이 어우러지는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의 풍경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은 단일한 행사라기보다, 매일 다른 테마로 구성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복합적 축제이다. 각 날짜마다 독립적인 성격의 행사가 열리며, 이를 통해 파스토 시민은 물론 외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관람객이 함께 호흡한다. 1월 2일은 ‘소년들의 날(Día de los Niños)’로 시작된다. 이날은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날로, 다양한 아동극, 놀이행사, 창의적 분장 퍼레이드가 열리며 축제의 문을 연다. 이후 3일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표현 무대인 ‘콜레크티보 퍼레이드(Desfile de Colectivos)’가 이어진다. 이 퍼레이드에서는 수많은 지역 예술단체가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은 의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전통문화와 현대 예술이 융합된 장면이 연출된다. 4일에는 ‘카사르페리타(Castañeda Family Parade)’라는 전통적인 퍼레이드가 중심이 된다. 이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전통 의상과 유머 가득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과거 콜롬비아 시골 가족의 삶을 풍자적으로 재현한다. 5일은 ‘흑인의 날(Día de Negros)’이다. 이날에는 검은 물감을 얼굴에 바르며, 노예 해방을 상징하는 축제의 핵심 테마가 실현된다. 참가자들은 거리로 나와 음악과 춤을 통해 해방과 자유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축제의 절정은 1월 6일 ‘백인의 날(Día de Blancos)’이다. 이날에는 흰색 분장이 도시 전체를 덮는다. 거리에는 거대한 카니발 퍼레이드가 열리며, 수십 미터에 달하는 조형물과 플로트가 등장한다. 이 조형물들은 나리뇨 지역 장인들이 1년 이상 준비하여 만든 것으로, 예술적, 기술적으로도 정교하며, 정치적 메시지, 사회 비판, 신화와 전설을 주제로 하는 경우도 많다. 마지막 날인 7일에는 ‘컬러 페스티벌(Día del Carnavalito)’이 열리며, 이전의 모든 행사를 압축하여 표현하는 종합 예술의 장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다양한 색의 분말을 뿌리며, ‘흰색’과 ‘검정색’을 넘어서 다채로운 삶의 색을 기념한다. 이는 축제의 주제인 평등, 다양성, 화합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마무리하는 상징적 행위로 여겨진다. 이 축제는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수공예, 관광, 음식산업 등이 활발히 운영되며, 콜롬비아 내외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예술가들과 지역 상공인들에겐 이 기간이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이후에는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며, 전통문화의 보존과 글로벌 문화 간 교류라는 새로운 과제도 함께 안고 있다.

평등과 다양성의 상징, 콜롬비아 블랑코 이 네그로 축제가 남긴 것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은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선, 인류 보편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흑과 백이라는 상반된 색채를 통해 인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극복하여 하나로 어우러지는 과정을 예술과 놀이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 축제는 매우 특별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사회적 갈등, 인종차별, 정치적 분열이 극심한 시대에 이 축제는 평화와 통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축제를 통해 콜롬비아는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공동체적 유산의 세계화를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문화로서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SNS와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그 경험을 공유하면서 축제는 국제적 소통의 도구로도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블랑코 이 네그로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강력한 도구다. 모든 시민이 예술가가 되고, 모든 거리가 무대가 되는 이 축제는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시민 간의 연대를 끈끈하게 만든다. 이는 단지 6일간의 행사가 아니라, 일 년 내내 공동체를 위한 준비와 협력, 창작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지역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블랑코 이 네그로 페스티벌은 단순히 보는 축제가 아닌, ‘참여하는 삶의 선언’이다. 다양성과 평등, 그리고 예술을 통한 해방의 정신이 이 축제를 통해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이 축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다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다르지만, 같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