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의 페리아 데 아브릴, 전통과 낭만의 집대성
세비야 봄의 향연, 삶을 예술로 승화한 축제의 시작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수도 세비야는 고풍스러운 건축과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도시는 매년 봄이 되면 특별한 활기로 가득 찬다. 바로 ‘페리아 데 아브릴(Feria de Abril)’, 즉 ‘4월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부활절 직후 약 2주간 이어지는 이 축제는 도시 전역을 환희와 열정으로 물들이며, 세비야 시민뿐 아니라 스페인 전역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을 매혹시킨다. 이 축제는 1847년 가축 시장으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문화와 오락, 사교 중심의 민속 축제로 발전하였다.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 고유의 전통 복식, 말과 마차, 플라멩코 음악과 춤, 독특한 음식 문화가 어우러져 지역 정체성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세비야는 이 축제를 통해 ‘삶 자체가 예술’임을 천명하듯, 일상의 순간순간을 축제의 무대로 승화시킨다. 페리아는 도시 외곽에 마련된 대규모 축제장(Real de la Feria)에서 개최되며, 이곳에는 수백 개의 ‘카세타(Caseta)’라고 불리는 천막식 부스가 줄지어 설치된다. 각 카세타는 가족, 친구, 기업, 정당 등 다양한 단체가 소유하거나 운영하며, 내부에서는 플라멩코 공연, 전통 음식과 음료, 사교 파티 등이 진행된다. 전통적으로 카세타는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일부 공공 카세타는 관광객에게도 개방되어 안달루시아의 정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축제는 단지 일회성의 즐거움이 아니라, 세비야 사람들의 생활과 정체성이 응축된 문화 행위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플라멩코를 배우고, 어른들은 매년 카세타의 장식을 준비하며, 도시 전체가 ‘함께 만드는 축제’로 이 행사를 계승해 나간다. 이는 페리아 데 아브릴이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세대 간의 연결고리이자 문화 공동체의 중심축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플라멩코, 마차, 와인의 향연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문화
페리아 데 아브릴의 풍경은 화려하고 정교하다. 여성들은 ‘트라헤 데 플라멩카(traje de flamenca)’라고 불리는 전통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꽃을 장식하며, 레이스와 주름이 가득한 의상으로 카세타를 누빈다. 남성들은 전통적인 ‘트라헤 코르토(traje corto)’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말을 타거나 마차를 운전한다. 이처럼 전통 의상을 착용한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감각을 자아낸다. 축제의 낮 시간에는 마차 퍼레이드(El Paseo de Caballos)가 주요 행사로 진행된다. 장식된 말과 마차 행렬이 카세타 주변 도로를 따라 지나가며, 축제장의 시각적 중심을 형성한다. 마차는 단지 교통수단이 아니라, 가문과 전통을 과시하는 예술 작품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행렬은 세비야의 햇살 아래 눈부신 장관을 연출하며, 관람객들에게 안달루시아의 고유 미학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밤이 되면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른다. 각 카세타에서는 플라멩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춘다. 즉흥성과 리듬, 감정이 하나로 어우러진 플라멩코는 이 축제의 정서적 중심이며, 이를 통해 세비야 사람들의 열정, 슬픔, 환희가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된다. 현장에서 느끼는 플라멩코는 공연장이 아닌 일상의 연장에서 탄생하기에, 더욱 진실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음식과 음료 역시 이 축제의 핵심 요소이다. 가스파초, 하몬 이베리코, 또르띠야, 튀긴 생선류 등 안달루시아 지역 특유의 요리가 카세타를 채우며, 와인과 맥주, 특히 ‘레부히또(Rebujito)’라는 셰리와 사이다의 혼합 음료가 밤새 흘러넘친다. 이곳의 식문화는 단지 식사의 차원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대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한다. 더불어, 축제의 마지막에는 세비야 강변에서 대규모 불꽃놀이가 펼쳐지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는 한 주간의 열정과 환희를 하늘에 수놓듯 표현하는 장면으로, 참여자들에게 감동적인 마무리를 선사한다.
지역 정체성과 문화 자긍심이 살아있는 유럽 전통 축제의 보고
페리아 데 아브릴은 단지 세비야 사람들의 일상을 장식하는 축제를 넘어, 스페인 안달루시아 문화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축제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세대를 아우르고,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보편적 감동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유는 단지 시각적 화려함이나 볼거리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공동체 의식, 예술적 감각,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진정성을 가지고 관람객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페리아는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숙박업, 의류 및 액세서리 산업, 식음료, 관광 서비스 등이 일시적으로 급증하며, 지역 내 일자리 창출과 중소상공인 소득 증대에 기여한다. 동시에 축제를 위한 전통 의상 제작, 카세타 설계, 말 사육 등 관련 산업도 연중 활기를 유지하게 된다. 이는 축제가 단지 문화 행사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차원에서도 페리아는 지속 가능한 전통 보존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구전 전통, 민속 음악, 수공예 장식, 공동체 중심의 생활 문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비야의 정체성이 견고하게 지켜지고 있다. 또한 현대적인 요소—공공 카세타 운영, 외국인 대상 체험 프로그램 등—과의 결합을 통해 축제가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세비야의 페리아 데 아브릴은 ‘지역의 정체성이 세계적 유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사례다. 열정과 우아함, 공동체와 예술, 일상과 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이 축제는 단순한 지역 이벤트가 아니라, 문화적 정수를 응축한 ‘삶의 축제’로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