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아티 아티한 축제, 민속신앙과 가톨릭의 화려한 융합

필리핀의 아티 아티한 축제는 민족의 뿌리와 종교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 행사로, 원주민 전통과 스페인 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반영한다. 아클란 주 칼리보에서 매년 개최되는 이 축제는 화려한 복장, 북소리, 춤으로 거리를 가득 채우며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역사를 축제로 구현한다.

 
필리핀 아티 아티한 축제, 민속신앙과 가톨릭의 화려한 융합


아티 아티한: 축제 속의 필리핀 정체성과 신앙

필리핀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혼재하는 국가로서, 이질적인 문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필리핀 아클란 주 칼리보(Kalibo)에서 매년 1월에 열리는 ‘아티 아티한 축제(Ati-Atihan Festival)’이다. 이 축제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거리 퍼레이드와 가면 무도회의 축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기원은 원주민과 스페인 식민 통치, 가톨릭 전파라는 복합적 역사 속에서 탄생한 종교적·민속적 행사이다. ‘아티 아티한’이라는 이름은 ‘아티 사람처럼 행동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축제 참가자들이 온몸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아티족처럼 분장하여 거리로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전통이다. 이는 13세기경 비사야 제도에 도착한 말레이계 이민자들과 원주민 아티족 간의 우호적 관계를 기념하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며 가톨릭 성인 ‘성토 니뇨(Santo Niño, 아기 예수)’ 숭배 의례와 결합되면서 종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이 축제는 종교, 역사, 공동체 의식이 복합적으로 표현되는 필리핀식 문화 혼합주의(Syncretism)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주민 전통 복장과 현대적인 퍼레이드가 공존하고, 드럼 비트와 함께 울려 퍼지는 ‘비바! 성토 니뇨!’의 외침은 축제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신앙과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필리핀의 수많은 축제 중에서도 아티 아티한은 그 역사성과 규모, 참여형 행사 구조로 인해 가장 영향력 있는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내외 관광객의 참여가 활발하며, 지역 경제 및 사회적 결속력 강화에도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예술적 요소가 풍부하여 무용, 음악, 패션, 장식 등에서 독창성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중요한 문화 창작의 장이기도 하다.


축제의 흐름과 예술적 상징의 다양성

아티 아티한 축제는 대체로 1월 둘째 주부터 셋째 주까지 약 10일간 진행되며, 매일 다양한 행사와 의식이 이어진다. 축제는 공식적으로 가톨릭 미사로 시작되며, 이 미사는 성토 니뇨의 형상을 축복하고, 참가자들이 신에게 감사와 염원을 전달하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 행렬과 퍼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지역 공동체, 민간단체, 학교, 공공기관 등 다양한 그룹이 참가해 자신들만의 창의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의상은 대부분 알록달록한 색감과 전통적인 아티족 복장에서 영감을 받은 형상으로 꾸며지며, 참가자들은 북과 타악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거리 행진을 한다. 특히 의상의 장식은 화려한 깃털, 조개, 천연섬유, 반짝이 등을 활용하여 지역 자원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보여준다. 이 퍼레이드는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연대하고 함께 문화를 창조해가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축제 중간에는 ‘시나크사야(Sinaksakaya)’와 같은 소규모 공연과 댄스 배틀, 문화예술 워크숍, 민속 무용 공연이 이어진다. 참가자들이 경쟁과 협업을 통해 무대를 구성하면서 지역 예술가들의 역량도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기획과 퍼포먼스에 참여함으로써, 축제가 과거의 전통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지향하는 문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마켓과 노점상도 중요한 축제의 일부이다. 아클란 지역의 전통 음식인 이나사을 닭구이(Inasal), 바누그(Banug) 술, 포크 시식행사 등은 외부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며 지역 농산물과 식문화의 전통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축제 후반에는 ‘슬로우 퍼레이드’라 불리는 경건한 종교 의식이 이어지고, 성토 니뇨의 조각상이 시내를 천천히 행진하며 주민들의 기도를 받는다. 이로써 축제는 흥겨움과 경건함을 균형 있게 포괄하는 필리핀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문화적 기억의 재현, 그리고 지역사회의 미래

아티 아티한 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필리핀 민족 정체성과 종교, 문화적 기억을 재현하고 계승하는 중요한 사회적 장치이다. 이 축제를 통해 원주민과 이주민, 가톨릭과 전통 신앙,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묶이는 경험을 제공하며, 문화 혼합과 평화적 공존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여 자긍심과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한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아티 아티한은 필리핀의 ‘문화적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실험장이기도 하다.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성과 글로벌 트렌드를 흡수하여 진화하는 축제는 새로운 문화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축제는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고,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다양한 지역에서 이 축제를 벤치마킹하거나 유사한 행사를 개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아티 아티한의 문화적 확산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 축제는 관광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 소득 창출과 고용 증대에 기여한다. 숙박, 음식, 교통, 예술, 소매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파급효과가 뚜렷하며, 정부와 민간의 협업이 활성화되어 지속 가능한 지역 개발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관심 속에 필리핀의 문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아티 아티한은 축제라는 형식을 통해 단순한 축하의 의미를 넘어, 역사와 신앙, 공동체와 창의성이 만나는 다층적인 문화 현상이다. 이는 필리핀 사회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도전을 예술로 승화시켜 공동체적 미래를 꿈꾸는 방식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